경주예술학교
경주문화협회(慶州文化協會) 첫 사업(事業)로 경주예술학원(慶州藝術學院) 개설(開設) 이채우(李採雨), 정덕영(鄭德永) 양씨(兩氏)의 특지(特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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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보(194604.03)
·자료 내용
【경주(慶州)】 세계문화사(世界文化史) 상(上)에 찬란(燦爛)한 예술(藝術)을 남겨둔 신라(新羅) 천년(千年)의 구지(舊趾) 경주(慶州)가 풍우설상(風雨雪霜) 삼십유여년간(三十有餘年間) 원통(怨痛)하게도 왜종(倭種)의 침범(侵犯)에 여지(餘地)업시 □/진발피엿드니 해방(解放)의 우렁찬 종(鐘)소래에 흉몽(凶夢)을 게으리고 과거(過去)의 비운(悲運)을 만회(挽回)식커 조선신문력건설(朝鮮信文力建設)에 이바지하고저 용감(勇敢)하게도 탄생(誕生)한 경주문화협회(慶州文化協會)가 첫 사업(事業)으로서 경주예술학교(慶州藝術學校)을 창립(創立)코저 계획(計畫) 중(中)이라함은 기보(旣報)한 바와 갓거니와 드듸여 신춘(新春)을 마지한 삼월(三月) 십팔일(十八日) 경주예술학원(慶州藝術學院)이란 명칭(名稱)으로 당국(當局)의 인가(認可)를 어덧다. 본(本) 예술학원(慶州藝術學院)의 모체(母體)가 문화협회(文化協會)인만큼 동협회(同協會) 간부(幹部) 일동(一同)의 고심노력(苦心勞力)은 말할 것도 업거니와 초대원장(初代院長)에 추대(推戴)된 당지(當地) 덕망가(德望家) 이채우(李採雨)씨(氏)의 전권적(全權的) 진력(盡力)과 주택난(住宅難)의 현시하(現侍下)에 교수진(敎授陣)의 숙사(宿舍)를 무료제공(無料提供)을 단언(斷言)한 정덕영(鄭德永)씨(氏) 등(等)의 의거(義擧)가 금일(今日)의 결실(結實)을 촉성(促成)한 원동력(原動力)이라고 할 수 잇다 그리고 학과(學課)는 음악(音樂) 미술(美術)의 이과(二科)를 두고 신(新)□이욱 며칠 가절(佳節) 오월(五月) 오일(五日)에 힘차게 개교(開校)하게 되엇는데 신흥조선(新興朝鮮)의 압날에 유위(有爲)한 신인영재양성(新人英才養成)이 잇을 것으로 일반(一般)의 기대(期待)는 크고도 높다한다.
- 경주문화협회 회원이 아닌 정덕영이 경주예술학교 교수진의 관사를 제공하고 있다. 정덕영은 이후 2기 학원이사회 이사가 된다.
- 경주문화협회 회원이 아닌 정덕영이 경주예술학교 교수진의 관사를 제공하고 있다. 정덕영은 이후 2기 학원이사회 이사가 된다.
·출처 및 기타
자료 출처 : 대구시보
자료 형태 :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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